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삐짐

인터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두는 생략하고 바로 질문부터 드릴게요. 에이트레인님이 활동하신 지 벌써 10년 정도 되셨는데, 이 여정의 시작을 한번 돌이켜보고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앨범 활동으로는 2016년에 데뷔해서 10년 차가 됐습니다. 다만 제가 제 음악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 때를 기점으로 치면 2019년 정도인 것 같아요. 정규 1집 《PAIN GREEN》, 2집 《PRIVATE PINK》, 그리고 3집 《POVIDONE ORANGE》로 활동하고 있고요.원래 저는 음악이라기보다는 그냥 노래를 잘하는 아이,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해서 인기를 얻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음악가가 되는 건 마음속 꿈으로 계속 간직하고 있었지만, '실현시키면 안 되는 꿈'으로 생각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죠.친구들이 놀 때 저는 돌아와서 공부를 해야 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유년 시절 제가 부끄러워했던 집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게 우리 가족 모두의 뜻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많이 접어두고 살았었는데, 회사까지 취직하고 보니까 더 늦기 전에 인생을 걸어보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 결심한 게 2014~15년 정도였고, 회사를 그만두고 싱글로 데뷔한 게 2016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어려서부터 계속 음악을 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공부를 곧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 발로 불안정한 삶을 택해 걸어 들어오신 건데, 그 과정에서 후회를 하신 적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명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고된 일일지 예상은 했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가난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 시간이 10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고, 앞으로의 10년을 더 이 길을 걷는다면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자신이 없거든요. 초반에 가졌던 불타오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음악에 더 진심인 건 맞는데, 현실적인 것까지 다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온도가 조금 내려간 느낌이죠.

그 '온도의 변화'가 에이트레인님이 말씀하신 ‘삐짐’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될 것 같아요.
제가 꽤 강한 확신을 가지고 3집 《POVIDONE ORANGE》를 발매했어요. 정말 자부심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가진 확신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준 실망감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에게 ‘삐졌어요’.슬럼프나 번아웃보다는 '삐짐'이 제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인식한 결과예요.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고, 제가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그만큼 알아주지 않으니까 삐진 거죠. 좀 우스운 표현 같아도 정말 많이 생각해 봤는데, 그냥 삐진 게 맞아요.

에이트레인님에게 '치유'란 무엇이며, 이번 곡 '포비돈'은 어떤 의미인가요?
치유의 시작은 ‘직시’라고 생각해요. 제가 "나는 삐진 게 맞아"라고 결론을 낸 것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직시했기 때문이죠. 1집 때는 제 고통을 배설하듯 뱉어냈고, 2집 때는 자가 치유를 하며 그토록 원했던 명예(한국대중음악상 수상)도 얻었습니다.그 과정을 겪으며 이제 더 이상 ‘내 얘기’에만 집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이 다 같이 망해가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연대의 매듭 정도는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3집 《POVIDONE ORANGE》를 기획하게 됐습니다.‘포비돈’은 어릴 적 다치면 바르던 빨간 약이에요. 사실 포비돈은 상처를 완전히 낫게 하기보다 추가 감염을 막는 1차 처방이거든요. 그러려면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먼저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굉장히 엉망이지만 그래도 찬란한 존재야"라는 가사처럼, 우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소독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10년 뒤의 에이트레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큰 사랑이 필요해요. 지금은 제 명예를 스스로 사랑하는 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면 계속 해나갈 명분이 생길 것 같거든요.사실 진짜로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시험을 준비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려 했죠.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막 멜로디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아, 개는 똥을 못 끊는구나.' 저는 어차피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예요. 저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도 "너는 그만두면 안 된다"며 제 멱살을 잡고 끌어줬어요. 결국 그 사랑들 덕분에 다시 서게 된 거죠.

오늘 오프비트(OFFBEAT)와 함께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저한테 제안을 주신 것 자체가 저에겐 ‘사랑’이었어요. 저는 그냥 그런 사랑이 필요했던 거예요. 음악이 끝나고 나니 다시 삐진 마음이 된 것 같아 이상하긴 한데(웃음), 연주하고 서로 "좋다" 말하며 계산 없이 몰입하는 그 카타르시스가 저에겐 사랑의 순간이에요. 이런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온통 모여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롭지 않고 큰 힘이 됐습니다.사랑은 달라고 해서 받는 게 아니라, 해줘야 받는 거잖아요. 제 삐짐을 직시해 보니 결국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렇다면 제가 더 큰 사랑을 준비해서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결론이 섰습니다. 앞으로 더 근사한 음악을 계속 만들어서 많이 울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