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라는 나침반을 들고 뚜벅뚜벅 걷는 길치

February 9, 2026
interviewee
도빛
interviewer
OFF-BEAT

베이스라는 나침반을 들고 뚜벅뚜벅 걷는 길치

Q.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자기소개에 앞서 근원적인 질문부터 던져보고 싶어요. 도빛은 왜 음악을 하나요? 이 길에 들어서기까지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A.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노래하는 것 자체는 중학교 때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워낙 완강하셨죠. 유학길에 올라 공부에 전념했고, 졸업 후에는 10년 가까이 홍보 전문가로 일하며 남들이 보기엔 아주 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어요. 그래서 남는 시간마다 그림을 배우고, 악기를 만지고, 작사·작곡 클래스를 찾아다녔죠. 그러다 문득 제 인생의 모토인 ‘10년 주기설’을 떠올렸어요. 10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는데, 홍보인으로서의 9년 차가 되었을 때 ‘이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인턴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발성부터 악기까지 밑바닥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늦게 시작했다는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베이스’라는 악기를 집어 들었고, 매일 합주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것이 지금의 제 음악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Q.

스스로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치’라고 표현하셨어요. 하지만 길치에게도 자신만의 나침반은 있을 것 같은데, 도빛의 나침반은 무엇을 향하고 있나요?

A.

저는 실제로도 길치예요. 뒤를 돌아보면 내가 어디로 왔는지 금방 잊어버리곤 하죠. 예전에는 그게 주의력 결핍 같아서 싫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렵게 길을 찾으려 애쓰지 않게 됐어요.

조금 일찍 나와서 헤맬 수 있을 만큼 헤매는 게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골목길에서 뜻밖의 풍경을 마주하는 게 길치만이 누릴 수 있는 매력이거든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음악 안에서 길치라는 사실이 때로는 행운처럼 느껴져요. 목표 지점을 향해 앞만 보고 뛰어갔다면 놓쳤을 수많은 감정과 경험들을 저는 헤매는 덕분에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거든요.

Q.

그 방황 속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유일한 나침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결국은 제 음악이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손에 꼭 쥐고 걷는 것 자체가 나침반이에요. 누군가는 그 방향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고,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나침반을 들고 움직이는 주체는 저니까요.

어떤 환경에 던져져도 그 상황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제 능력을 믿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소리들을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길 뿐입니다.

Q.

2025년은 도빛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깊은 번아웃을 겪으셨다고요.

A.

2025년은 제 계획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흘러갔어요. 그저 베이스 포크 싱글을 꾸준히 내는 게 목표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 프로그램(싱어게인)에 출연하게 됐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죠. 13월을 산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쉼 없이 달렸어요.

그러다 연말쯤 되니 에너지가 전소되더라고요. 주변에 너무 멋진 뮤지션들이 많아지다 보니, 비교할 대상이 아닌데도 자꾸 제 자신을 그들의 잣대에 대보며 자책하게 됐죠. "너는 왜 이걸 안 하고 있어? 너는 왜 이걸 못해" 약간 이쪽으로 빠지려고 하는 저를 발견하면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하지만 그 최초의 번아웃을 겪으며 처음으로 저를 놓아줬어요. "너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살았어, 조금 널브러져 있어도 돼"라고 스스로를 보듬어준 거죠. 그렇게 1월 한 달을 깊은 고민 속에서 보내고 나니 역설적으로 다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에너지가 차오르더라고요.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일종의 시장 조사였다면, 이제는 그 피드백들을 모아 저만의 진짜 ‘진국’을 보여줄 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

이번에 건반, 바이올린과 함께하는 ‘트리오’ 구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씬어송라이터(Scene-A Song-writer)’라는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지점일까요?

A.

맞아요.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 저를 차별화하고 싶어서 만든 말이 ‘씬어송라이터’였어요. 리스너들의 삶 속 어떤 장면(Scene) 안에 녹아드는 음악을 선물하고 싶다는 의미였죠. 그런데 그동안 베이스 포크라는 장르적 고집에 갇혀서 오히려 제가 그리려던 장면들을 다채롭게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베이스와 목소리만으로 한 시간을 채우는 건 듣는 이에게도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제 자존심과 고집을 조금 내려놓고, 정말 듣는 사람 입장에서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건반이 채워주는 풍성한 화성과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진다면, 제가 부르고 있는 노래 가사와 장면들이 훨씬 예쁘게 맞아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트리오를 꾸리게 됐습니다.

Q.

‘장르를 창시했다’는 뚝심 있는 모습에서 한 단계 더 유연해진 느낌이 드는데, 본인에겐 어떤 변화인가요?

A.

장르를 창시했다는 말 뒤에는 이 장르를 책임지겠다는 말도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베이스를 놓고 노래를 한다고 해서 베이스 포크가 아니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베이스를 향한 제 마음은 늘 애증 같은 것이라... 지겨워서 미워했던 베이스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이 친구와 함께 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사운드적으로 더 풍성한 레코딩을 고민하는 것이 현재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Q.

도빛에게 ‘베이스’란 악기 그 이상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A.

저에게 베이스는 ‘첫걸음’이자 ‘독립’입니다. 혼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 친구거든요. 마냥 미워할 수도 없고, 너무 사랑해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무대에만 머무르게 될 것 같거든요. 베이스 기타를 잡고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비로소 제 음악 인생의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어요. 이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 제가 하는 아티스트로서의 깊은 고민들조차 시작되지 않았을 거예요. 베이스가 든든하게 땅을 깔아주었기에 제가 그 위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거죠.

Q.

말씀하신 ‘10년 주기설’이 흥미롭습니다. 10년 뒤의 도빛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이전 직장도 9년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가 뭘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음악 역시 10년쯤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제가 의도한 장면들을 그려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지금은 금이 나올지 모르고 땅을 파는 광부 같기도 하고, 비트코인을 채굴하듯 리프와 가사를 맞추고 있지만, 10년 뒤에는 더 성숙한 ‘시너 송라이터’가 되어 있을 겁니다. 제가 꿈꾸는 축제와 페스티벌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과 호흡하며 그들의 삶에 잊지 못할 장면을 선물하고 싶어요.

그 원동력은 결국 제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제가 쥔 이 나침반을 끝까지 믿어주는 제 자신일 거예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자격지심보다는, 저만이 낼 수 있는 소리와 장면에 집중하며 앞으로도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Q.

이번 트리오 멤버들과의 케미가 남달라 보입니다. 단톡방 이름이 ‘도빛트코인 레츠고’라고요?

A.

하하, 맞아요. 제 저점일 때 매수해라, 나중에 엄청 올라갈 거다라는 농담 섞인 의미로 지었어요. 사실 이분들은 저한테 정말 대단한 분들이거든요. "왜 나랑 같이 음악 해 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도망갈까 봐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인간적인 정도 있고 제 음악이 가진 장면에 공감해 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제 곁에서 화성을 쌓아주고 멜로디를 더해줄 때, 제가 혼자서 베이스를 퉁기며 외롭게 고민하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듭니다. 최고의 팀이에요.

Q.

마지막으로, 도빛의 음악이 리스너들에게 어떤 잔상으로 남길 바라시나요?

A.

제가 길을 헤매며 발견한 작은 골목의 아름다움처럼, 제 음악이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뜻밖의 위로와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함께 걷는 그 과정에서 문득 마주치는 찬란한 순간들을 제 노래를 통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Q.

오늘 오프비트(OFF-BEAT)와 함께 라이브 클립 촬영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한마디가 있다면요?

A.

트리오 구성으로 영상화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정말 설레고 긴장됐어요. 제가 그동안 혼자 베이스를 메고 뚜벅뚜벅 걸어오며 만들었던 장면들이, 오늘 비로소 다채로운 색을 입은 것 같아 기쁩니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연습과 진심만큼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믿고 앞으로도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많이 들어주시고, 저와 함께 장면 속으로 들어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Q.
A.
Q.
A.
Q.
A.
Q.
A.
Q.
A.
Q.
A.
Q.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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