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하자, 앨범 한 번 더 내고

ROOM306의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히읗) 대학교 졸업 작품 믹스 마스터링을 허민한테 부탁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친한 친구의 소개였죠.(허민) 그때 곡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이게 누구지?' 싶어서 합주를 보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저랑 작업 하나 하실래요?"라고 물었죠. 제가 만든 일렉트로닉 비트를 보내줬는데, 효진(히읗)이가 15분 만에 곡을 써오더라고요. 그게 저희의 시작인 'Blue'라는 곡이에요.(이히읗) 사실 그때 저는 재즈를 전공하고 있어서 노래하는 게 좀 지겨워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허민이 감기 걸린 저를 의자에 거의 눕혀놓고는 "그냥 쓰레기처럼 불러도 돼, 그런 노래야"라며 'Tomorrow'를 녹음하게 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이렇게도 노래할 수 있구나.' 그 뒤로 친구의 자취방인 '306호'에 모여 밤새 술 마시고 작업하던 그 낭만이 저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팀을 유지해 오셨는데,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허민) '호랑이'라는 곡을 녹음할 때가 기억나요. 효진이한테 오페라 가수처럼 질러보라고 주문했는데, 녹음실이 터져나갈 듯한 에너지를 뿜어내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가진 스펙트럼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이히읗) 저는 이번 4집 녹음 과정이 정말 특별했어요. 10년이 넘으니까 이제는 '척하면 척'이더라고요. 제가 "이건 어때?" 하면 허민이 "너무 좋아" 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호흡이 천생연분 같았죠.예전에는 서로 성격이 너무 달라서 서운할 때도 있었거든요. 저는 단순한 편이고 허민은 깊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런데 이번 4집 곡들을 부르면서 처음으로 허민의 우울함과 힘듦에 온전히 공감하게 됐어요. "너 그동안 이런 마음이었구나"라고 말하며 많이 울컥했죠.

한때 음악을 그만두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소(全燒)'되어버린 것 같았던 그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허민) 2019년쯤이었을 거예요.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 세상에 없던 조합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저를 태워버렸죠. 12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도 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고 재미가 없더라고요. 결국 SNS에 '음악 그만둔다'고 선언하고 1년을 쉬었어요.단톡방에 1년 동안 아무도 메시지를 안 남기는 걸 보며 '이대로 끝내도 되겠다' 싶어 멤버들을 소집해 해체 얘기를 꺼냈죠. 그런데 다들 그러더라고요. "우리 팀 그런 팀 아니잖아. 몇 년이고 뒀다가 하고 싶을 때 다시 하면 돼. 앨범 아니어도 돼."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ROOM306은 '나'가 아닌데. 나 혼자 짊어진 짐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간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거죠.

이번 4집 《잔향》과 오늘 연주할 'Wood Fire'에는 어떤 마음을 담으셨나요?
(허민) 예전에는 제 의도대로 사람들이 음악을 해석해주길 바라는 아집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여백을 두고 싶어요. '이사', '반동', 'Wood Fire' 모두 고요하게 시작해 감정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고조시키다 허무하게 해소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해체'를 생각했을 때, 반대로 우리가 남기고 갈 '잔향'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누군가 곁을 지나갈 때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서운함,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들이요. 'Wood Fire'도 제목처럼 타들어 가고 재가 되는 이미지지만, 그 안에는 비워냄으로써 시작되는 새로운 출발이 담겨 있습니다.

ROOM306이 꿈꾸는 '여정의 끝'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히읗) 죽으면 끝나려나?(웃음) 어릴 땐 성공하고 싶었지만, 이제 ROOM306은 제 자아의 가장 큰 부분이자 행복 그 자체예요. 각자 생업을 열심히 하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어 음악을 하는 지금의 구조가 오히려 저희를 싸우지 않게 하고 오래가게 만들죠.(허민) 저희는 정말 효율적인 팀이에요. 많은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죠. 다른 팀의 시선에서 보면 저희는 이미 해체된 상태로 계속 살아있는 팀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기에 해체할 이유도 없죠. 예순 살이 되어서도 "나 뭐 만들었는데 한번 불러볼래?"라고 말할 수 있는 평화로운 관계가 저희의 끝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라이브 클립 촬영에 임하는 다짐과 리스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허민) 10년 차지만 처음 공연하는 기분이에요. 새로 합류한 기타리스트 우택 씨를 포함해 멤버들의 에너지가 지금 최고조거든요. 그동안 너무 오래 쉬어서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저희 노래를 들어주세요. 정말 정성을 다해 만든 좋은 노래들이거든요.(이히읗) 이번 앨범은 제가 인간으로서 조금 더 성숙해진 뒤에 부른 진심 어린 기록이에요. 예전과 다른 무드를 캐치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느슨하게, 하지만 ROOM306만의 흐름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